사방이 칠흑 같은 새벽 2시 미국에 인접한 캐나다 국경 지대. 헤드라이트를 끄고 갓길에 서 있는 검은색 밴에 얼굴을 가린 한국 여성 A씨가 올라탔다. 그는 운전자의 안내에 따라 의자 시트 덮개 밑의 좁은 공간에 누웠다. 덮개를 덮은 운전자는 국경 검문소를 별 문제 없이 통과했다. 미국 국경을 넘자마자 A씨는 차에서 내렸다. 그의 앞에는 마사지 업소 소개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2006년 미국에 밀입국해 5년째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여성 A씨(36)는 밀입국 상황을 뚜렷이 기억했다. A씨는 미국인들을 상대하는 ‘마사지 팔러’(마사지 업소)에서 일하면서 월 최소 1만 달러 이상을 벌었다. 5년 동안 이 돈을 모았으면 미국에 번듯한 사업장을 차리겠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외로움을 견디기 어려웠다. 마약을 투약하거나 쉬는 날엔 카지노를 찾아 하루에 1만 달러를 탕진하기도 했다.
형사정책연구원 장준오 박사는 지난해 5월부터 4개월 동안 미국 내 한국인 성매매 여성 18명과 매매 업소 관련자 4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한국인 여성의 미국 원정 성매매에 관한 첫 사례 분석 보고서다. 성매매 여성들은 대개 불법 취업 알선 조직을 통해 미국으로 밀입국했다. 이들은 항공료와 브로커에게 주는 수수료까지 밀입국에 평균 1만 달러 정도를 썼다. 이들은 ‘몇 년 고생해 인생을 바꾸겠다’는 꿈을 갖고 미국 국경을 넘었다.
◆대륙 횡단 영업=한국의 미국 원정 성매매 알선 조직은 인터넷에 ‘불황 탈출…미국에서 일할 언니 구합니다’ 같은 광고를 내 여성들을 유인했다. 브로커들은 미국 밀입국비를 내지 못하면 일단 현지에서 취업한 뒤 돈을 벌어 갚게 하기도 했다.
조사 대상이었던 성매매 여성 18명 중 7명이 캐나다·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밀입국했다고 답했다. 캐나다에서 차량에 숨어 국경을 통과하거나 멕시코인 사이에 섞여 미국~멕시코 국경의 사막을 걸어서 넘는 위험을 무릅쓰고 미국 땅을 밟았다. 나머지 11명은 관광비자를 받아 입국했지만 곧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전락했다. 이 중 한 명은 위장 결혼으로 영주권을 얻었다. 하지만 미국 이민당국에 적발될 경우 언제든지 추방될 수 있는 불안한 상태다. 이들은 브로커를 통해 미국 대도시의 마사지 업소·단란주점에 취업했다. 브로커 중엔 한인 콜택시 기사도 포함돼 있었다. 교민이 많은 대도시 번화가에 차를 세워놓고 호객 행위를 하기도 했다.
면접조사 결과 성매매 여성들은 평균 하루 13.5시간 동안 7~8명 이상의 고객을 상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의 80% 이상이 미국인이었다. 접대비는 시간당 200달러 안팎이었다. 이 가운데 80달러는 업주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단속을 피해 한 지역에 머물지 않았다. 브로커를 통해 새 업주를 소개받아 1~6개월마다 도시를 옮겨가며 일했다.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LA에서 일하다 댈러스를 거쳐 애틀랜타·뉴욕으로 이동했다. ‘U자형’ 대륙 횡단 영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현지에서 여성들을 만난 장준오 박사는 “성매매 여성들은 도박·쇼핑 중독에 빠져 한 번에 수천 달러 이상 소비한다”며 “도박으로 수십만 달러 빚을 져 성매매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는 45세 여성도 있었다”고 말했다. 마약에 빠져 지내는 여성도 상당수에 달했다. 거금을 손에 쥐겠다는 꿈을 안고 미국으로 들어갔지만 대부분 파멸에 이른다는 것이다. 장 박사는 “한국 여성들이 현지에서 착취를 당하거나 인권 침해를 받고 있는지에 대한 광범위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글=홍혜진 기자
일러스트=김경진 기자
[조인스] 기사입력 2010/02/22 13:14